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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20세기 카메라 브랜드 연대기: 니콘, 캐논, 펜탁스의 부상

20세기 카메라 브랜드 연대기: 니콘, 캐논, 펜탁스의 부상

20세기는 사진 기술의 혁신이 폭발적으로 이루어진 시기였다. 전쟁과 산업화, 대중문화의 확산이라는 격변의 역사 속에서,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개인의 표현과 사회의 기억을 담아내는 도구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세 개의 일본 브랜드—니콘(Nikon), 캐논(Canon), 펜탁스(Pentax)—는 기술력, 철학, 시장 전략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세계 사진 산업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이 글은 20세기 전반부터 말기까지, 이 세 브랜드가 어떤 배경 속에서 등장하고, 어떻게 경쟁하고, 결국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는지를 역사적 연대기 형식으로 탐색한다.



1. 전후 일본, 광학 기술의 뿌리

1930~1940년대, 일본은 아직 카메라 산업의 후진국이었다. 독일 라이카(Leica)나 롤라이(Rolleiflex) 같은 유럽 브랜드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고,
일본 업체들은 대부분 독일 제품의 복제판을 만드는 정도였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의 군수 산업과 광학 기술 개발은 의외의 결과를 낳았다. 전쟁을 위한 망원경, 조준기, 정밀 광학 장비의 수요는 일본 내 광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불러왔고, 이 기술 기반이 종전 후 민수용 카메라 산업으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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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40~1950년대: 태동기 – 독일을 모방하다

▪️니콘 (Nikon)

니콘의 전신은 "일본광학공업주식회사(日本光学工業株式會社, Nippon Kogaku)"였다.
초기에는 군용 정밀 렌즈 및 망원경 제작이 중심이었으나, 1948년 ‘니콘 I’을 출시하며 카메라 시장에 진출한다.
이 카메라는 라이카 스크류 마운트와 콘탁스 RF 시스템을 절충한 구조로, 니콘의 기술력을 처음으로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에 종군한 미국 보도사진가들이 니콘 렌즈의 뛰어난 해상력을 인정하면서 명성이 폭발한다. 이후 1959년의 Nikon F는 SLR 역사상 전설적인 모델로 자리매김한다.

▪️캐논 (Canon)

캐논은 1933년 설립된 정립광학연구소에서 시작되었으며, 1935년 ‘Kwanon(관음)’이라는 이름으로 시제품을 개발한 것이 시초였다. 이후 1937년 정식으로 캐논(Canon) 설립, 독일 라이카를 본뜬 Canon Hansa를 내놓는다.

초기에는 렌즈 기술이 부족해 니콘(당시 일본광학)의 렌즈를 공급받아 사용했지만, 1940년대 말부터 자체 렌즈 브랜드인 Serenar를 개발하면서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 펜탁스 (Pentax)

펜탁스는 1919년 설립된 "아사히 광학공업주식회사(Asahi Optical Co., Ltd.)"가 그 전신이다.
1952년, 일본 최초의 35mm SLR인 Asahiflex를 출시하며 기술적 선구자로 떠오른다. 이어서 1957년 Asahi Pentax를 출시하며 브랜드명을 펜탁스로 완전히 변경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펜탁스가 아이레벨 파인더와 펜타프리즘 구조를 대중화시켰다는 것이다.
이후 모든 SLR 카메라의 기본 구조가 되는 이 디자인은 펜탁스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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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60~1970년대: 일본 SLR 전성시대

이 시기 일본 카메라 브랜드는 유럽을 제치고 세계 시장의 주역이 된다. 특히 니콘, 캐논, 펜탁스는 각자의 방향으로 발전하며 ‘일본식 SLR’의 정석을 확립한다.

▪️Nikon F의 신화 (1959~)

니콘 F는 모듈형 구조, 뛰어난 내구성, 정밀한 메커니즘으로 전문가 시장을 장악했다.
전 세계 보도사진가, 전쟁기록자,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가들이 애용했으며, "전쟁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카메라"라는 전설까지 생겼다.

▪️ Canon의 기민한 대응

캐논은 기술보다는 소비자 친화적인 인터페이스, 빠른 혁신, 브랜드 마케팅으로 일반 대중의 시장을 공략했다. 1971년 Canon F-1을 출시하며 전문가 시장에도 본격 진입했고, AE-1(1976)은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 내장 SLR로 대중 시장을 폭발적으로 확장시켰다.

▪️ Pentax의 조용한 혁신

펜탁스는 니콘, 캐논과 비교해 다소 조용했지만, Spotmatic(1964)을 통해 TTL 노출계 내장 SLR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며 기술 혁명을 선도했다. 콤팩트하면서도 뛰어난 광학 성능으로 사진 애호가와 예술 사진가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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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80~1990년대: 오토포커스 경쟁과 전자화의 길

이 시기부터는 전자화와 오토포커스(AF) 기술 경쟁이 본격화된다.

캐논은 과감하게 기존 FD 마운트를 포기하고
EOS 시스템(1987)을 도입, 전자식 마운트로 완전히 전환한다. 이는 디지털 시대로 가는 가장 혁신적인 선택으로 평가된다.

니콘은 F 마운트를 유지하면서도 전자화와 호환성 간 균형을 추구했다. 이는 일부 사진가에게는 장점, 일부에게는 기술적 제약으로 작용했다.

펜탁스는 다소 보수적인 대응으로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작고 가벼운 SLR로 시장의 틈새를 공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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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브랜드의 철학과 전략 차이

브랜드 철학/전략 대표 모델

니콘 전문가 중심, 견고함과 정밀함 Nikon F 시리즈, F3
캐논 소비자 친화, 혁신적 전환 AE-1, EOS-1
펜탁스 기술 선구, 작고 실용적인 설계 Spotmatic, K1000


이 브랜드들이 모두 일본이라는 동일한 뿌리에서 출발했음에도, 서로 다른 철학을 추구한 결과 각각의 팬층과 미학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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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카메라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시대의 초상이다

니콘, 캐논, 펜탁스는 단순히 제품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진을 통해 시대를 읽는 방식을 설계했다.
니콘은 전쟁과 다큐멘터리의 눈이 되었고, 캐논은 대중의 손에 사진을 쥐여줬으며, 펜탁스는 예술적 감성과 기술의 균형을 이루었다.

이 세 브랜드의 궤적은 20세기 사진문화의 진화 그 자체다. 이들의 경쟁과 협력, 도전과 혁신은 지금 우리가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를 수 있게 만든 토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