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고를 때 우리는 흔히 브랜드나 렌즈 성능에 주목한다. 그러나 사진의 본질적인 품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포맷(format)’이다. 필름카메라 시대의 포맷은 단순한 크기를 넘어, 사진가의 철학과 스타일, 심지어 사진의 운명을 결정짓는 틀과도 같다.
이번 글에서는 아날로그 사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4대 필름 포맷—35mm, 120, 하프, APS—에 대해 심도 있게 비교해 보고자 한다.
1. 35mm 포맷: 표준의 탄생
35mm 필름은 오늘날 가장 널리 쓰이는 ‘표준 포맷’이다. 36x24mm 크기를 가진 이 규격은 19세기 후반 영화 필름에서 유래했으며, 1920년대 라이카(Leica)가 소형 카메라에 채택하면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크기와 무게 덕분에 이동성이 크게 향상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도 사진과 일상 기록의 주력 매체로 자리 잡았다.
35mm 포맷의 강점은 다양하다. 다양한 브랜드와 렌즈의 호환성, 풍부한 필름 종류, 넓은 현상 인프라 덕분에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특히 심도와 해상도의 균형이 뛰어나 인물, 거리, 풍경 등 여러 장르에서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점도 큰 장점이다.
디지털카메라의 ‘풀프레임’ 기준조차 35mm 필름 규격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 포맷은 단순한 규격을 넘어 사진 문화를 정의한 역사적 기준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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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20 포맷: 중형의 품격
120 필름은 일반적으로 ‘중형 포맷(Medium Format)’으로 분류되며, 프레임 크기는 사용하는 카메라에 따라 6x4.5, 6x6, 6x7, 6x9 등으로 다양하게 변화한다. 이 넓은 프레임은 단순히 해상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형 필름이 보여주는 결과물은 픽셀 수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촉각적으로 느껴지는 공기감과 입자의 존재, 그리고 풍부한 계조 표현으로 완성된다. 사진 한 장이 지닌 정보량은 곧 ‘사진을 보는 경험’을 바꾸며, 보는 이로 하여금 장면 속에 깊이 빠져들게 만든다.
120 포맷을 사용하는 카메라는 대부분 수동 조작 기반이며, 필름당 촬영 컷 수는 일반적으로 10컷에서 16컷으로 제한적이다. 이로 인해 촬영자는 한 컷, 한 컷에 집중하게 되고, 사진 한 장을 찍는 순간의 무게감과 긴장감은 타 포맷과는 비교할 수 없는 몰입을 요구한다. 특히 상업 광고, 예술 사진, 포트레이트와 같이 장면의 밀도와 정밀한 표현이 중요한 장르에서 중형 포맷의 위력이 드러난다.
단점도 있다. 바디와 렌즈의 무게, 운용의 불편함, 필름 및 현상 비용의 부담 등은 진입 장벽을 높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진가들이 120 포맷을 고수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미지의 깊이와 밀도, 감정의 미묘한 표현이 가능한 이 포맷은, '정적인 예술'로서의 사진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유일무이한 매체다. 디지털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중형 필름은 여전히 아날로그 사진의 정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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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프 포맷: 절반의 감성과 두 배의 컷
하프 포맷 카메라는 35mm 필름을 사용하면서도 프레임을 절반 크기인 18x24mm로 세로 분할해 사용한다. 이로 인해 한 롤에 무려 72컷까지 촬영이 가능하며, 같은 양의 필름으로 두 배의 순간을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성과 효율성이 탁월하다. 1960~70년대 일본에서는 이 실용성과 독특한 감각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붐을 일으켰고, 특히 Olympus Pen 시리즈가 아이코닉한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하프 포맷의 가장 큰 매력은 부담 없는 촬영이다. 필름 소비가 적기 때문에 마음껏 셔터를 누를 수 있어 초보자나 여행자, 일상 스냅을 즐기는 사용자에게 적합하다. 뿐만 아니라 하프 포맷 특유의 세로 프레임은 일상적 피사체조차 색다른 구도로 재해석하게 만들며, 사진가의 시선을 더욱 창의적으로 유도한다.
물론 단점도 존재한다. 프레임이 작아 인화 시 상대적으로 해상도가 낮아질 수 있고, 세로 프레임이 기본이기 때문에 가로 구도의 장면을 찍을 땐 카메라를 돌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약조차도 하프 포맷만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감성적 사진 표현을 중시하는 필름 유저들 사이에서 다시금 조용한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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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PS 포맷: 짧았던 혁신의 시대
APS(Advanced Photo System)는 1996년 코닥, 후지필름, 캐논, 니콘 등이 공동 개발한 혁신적인 필름 시스템이다. 약 16.7x30.2mm 크기의 필름은 카트리지형으로 설계되어 자동 로딩, 중간 필름 교체, 촬영 정보 기록 등의 기능을 제공했다.
또한 C(Classic), H(HD), P(Panorama)의 세 가지 화면 비율 선택 기능도 있었다.
당시에는 초보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편의성 덕분에 큰 기대를 모았고, 일부 고급 컴팩트카메라와 SLR에도 탑재되며 시장에서 주목받았다. 그러나 APS의 시대는 짧았다. 디지털카메라가 급격히 대중화되면서 APS는 고작 10년 만에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고, 현재는 필름도 거의 생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PS는 단순한 실패작이 아니었다. 포맷 자체는 사라졌지만, APS의 설계 철학은 디지털로 이어졌다. APS는 훗날 ‘APS-C 센서’라는 이름으로 디지털카메라 시대에 계승되며, 필름과 디지털의 경계에서 중요한 전환점 역할을 했다. 이는 오늘날 미러리스와 DSLR 등 중급기에서 여전히 주력 포맷으로 사용되고 있어, 그 유산은 결코 작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결론: 포맷은 단순한 규격이 아니다
카메라 포맷은 단지 필름의 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진가의 사고 방식, 리듬, 표현의 깊이를 결정짓는 틀이다.
▫️35mm는 범용성과 접근성,
▫️120은 예술성과 깊이,
▫️하프 포맷은 효율성과 감성,
▫️APS는 혁신과 기술의 유산을 대변한다.
필름 카메라를 통해 시간을 기록하고자 한다면, 자신이 추구하는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포맷을 고르는 일이야말로 가장 첫 번째이자 중요한 선택이다. 사진은 프레임 안에서 이루어지는 시선의 조율이다. 그 프레임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감성적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포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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